

조선 초기에 개발된 혁신적 은 추출법인 ‘연은 분리법’은 세계 최초로 수은 없이 은을 생산하는 신기술이었으나, 국내에서의 금지로 인해 일본으로 유출되었습니다. 이 기술은 하급 광산이었던 일본 이와미 은광을 세계 1위 광산으로 변모시켰고, 일본은 전 세계 은의 1/3을 생산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이 자본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통한 글로벌 무역망을 형성했으며,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만든 ‘아리타 자기’와 결합해 유럽의 티 문화를 창조했습니다. 반면 조선은 당파 싸움과 기술 경시 풍조로 인해 ‘코레아호’로 대표되는 대외 무역의 기회를 놓치며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목차
“조선의 기술, 일본의 부(富)가 되다” 연은 분리법과 잃어버린 1600년대의 기회

조선에서 태동한 세계 최고의 은 추출 기술 ‘연은 분리법’이 어떻게 일본을 세계적인 은 강국으로 만들고, 유럽의 문화까지 바꿨는지 그 드라마틱한 역사를 분석합니다.
1. 연은 분리법: 수은 중독을 해결한 조선의 하이테크

1503년, 조선의 김감불과 김검동은 납을 이용해 은을 순도 높게 분리하는 ‘연은 분리법’을 발명했습니다.
죽음의 수은 아말감법을 넘어서다
당시 유럽과 남미에서는 은을 분리하기 위해 수은을 사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원주민과 노새가 수은 중독으로 목숨을 잃었으나, 조선의 기술은 납과 재의 흡수 성질을 이용해 인체 해가 적고 효율이 높은 획기적인 방식이었습니다. 명나라의 ‘천공개물’에도 소개될 만큼 당대 최고의 신기술이었습니다.
기술의 금지와 일본으로의 유출
하지만 중종은 연산군의 업적이라는 이유와 사치 척결을 명분으로 이 기술을 금지했습니다. 결국 일자리를 잃은 기술자들은 일본으로 건너갔고, 1533년 일본 이와미 은광에 이 기술이 도입됩니다. 이는 일본이 전 세계 은의 30%를 생산하며 대항해시대의 핵심 주역으로 부상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 은과 자기가 만든 글로벌 무역의 고리

일본에서 쏟아져 나온 은은 네덜란드 유대인 상인들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대박’ 무역
네덜란드 상인들은 일본의 은을 가져다 중국의 금과 비단으로 바꾸고, 다시 인도의 후추를 사는 식으로 막대한 차익을 남겼습니다. 특히 은본위제였던 중국에서 은의 가치가 유럽보다 2배 높았기 때문에 이 무역은 멈추지 않는 황금알이 되었습니다.
아리타 자기와 유럽의 티(Tea) 문화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 이삼평은 일본 아리타에서 자기를 굽기 시작했습니다. 1300℃ 이상의 고온을 견디는 조선의 가마 기술과 청화백자 안료인 코발트 활용법이 더해진 아리타 자기는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집 한 채 가격에 팔릴 만큼 인기를 끌었습니다. 우리가 현재 쓰는 찻잔 받침과 찻주전자의 원형이 바로 이때 완성되었습니다.
3. 코레아호(Corea)의 좌절과 조선의 당파 싸움

서구 열강이 조선의 기술력을 알아보고 무역을 시도했으나, 조선 내부의 상황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멜 표류기와 코레아호의 건조
제주도에 표착했던 하멜의 보고서로 조선이 청화백자를 만드는 기술국임이 유럽에 알려졌습니다. 1669년 영국은 조선과의 직무역을 위해 ‘코레아호’를 출항시켰으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일본의 방해와 동남아 노선의 변화로 끝내 조선 땅을 밟지 못한 채 폐선되었습니다.
탕평책 이전의 궁중 암투
코레아호가 항해하던 시기, 조선은 숙종 시대의 환국 정치와 장희빈·인현왕후를 둘러싼 당파 싸움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대외 무역을 통한 국부 창출보다는 내부 권력 투쟁이 우선시되던 시대적 한계는 조선을 고립된 섬으로 남게 만들었습니다.
4. 결론: 기술과 기술자를 대하는 국가의 태도

역사는 기술을 가진 나라보다, 그 기술을 소중히 여기고 시스템화한 나라가 최후에 웃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은광의 주인은 바뀌었는가?
조선의 연은 분리법이 일본의 은광을 깨웠고, 조선 도공의 손끝이 유럽의 식탁을 바꿨습니다. 그러나 그 결실은 네덜란드와 일본이 가져갔습니다. 기술자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정치적 논리로 기술을 금기시한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현대 반도체 전쟁에 주는 교훈
현재 세계 최대 은 생산지인 고려아연의 사례에서 보듯, 제련 기술은 여전히 국가의 핵심 경쟁력입니다. 과거 조선이 놓친 ‘연은 분리법’의 교훈은 2026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술 패권과 인재 보호가 국가 생존의 직결된 문제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
한 장 요약
- 신기술 개발: 조선 시대에 ‘연은 분리법’이라는 혁신적인 은 추출법이 발명되었습니다.
독성이 강한 수은 대신 납을 쓰는 아주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 일본으로의 유출: 하지만 왕실에서 이 기술을 금지하는 바람에 실직한 기술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갔고, 일본의 이와미 은광을 세계 최고의 광산으로 만들었습니다. - 세계의 은 창고: 일본은 이 기술 덕분에 전 세계 은의 33%를 생산하게 되었고,
이 돈으로 유럽과 무역하며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 아리타 자기: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만든 아리타 자기는
유럽 귀족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현대 차 문화(티타임)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 코레아호의 좌절: 유럽에서 조선의 기술력을 알아보고 ‘코레아호’라는 무역선을 보내려 했지만,
일본의 방해와 조선 내부의 복잡한 정치 상황 때문에 결국 무산되었습니다. - 교훈: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도 기술자를 대우하지 않고 싸움만 하다가
국부를 창출할 최고의 기회를 다른 나라에 통째로 넘겨준 뼈아픈 역사입니다. - 핵심 포인트: 지금의 반도체 경쟁처럼, 과거에도 핵심 기술 하나가 나라의 운명을 갈랐습니다.
기술과 인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오늘의 사유
[타오르는 가마 속에서 녹아내린 조선의 기회]
역사의 수레바퀴는 때로 이름 없는 노비의 손끝에서 시작됩니다. 김감불과 김검동이 연산군 앞에서 시연했던 ‘연은 분리법’은 단순한 제련술이 아니라, 조선을 세계 최대의 은 수출국으로 만들 수 있었던 ‘국가적 열쇠’였습니다. 하지만 그 열쇠는 정치적 당파 싸움과 기술 경시라는 차가운 바다에 던져졌고, 그 기회는 바다 건너 일본의 이와미 은광에서 찬란하게 꽃피었습니다.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의 흙으로 빚은 아리타 자기가 유럽 귀족들의 식탁을 수놓는 동안, 정작 기술의 주인인 조선은 ‘코레아호’라는 이름의 상선조차 맞이하지 못한 채 닫힌 문 안에서 서로를 겨누고 있었습니다. 기술은 국경을 넘지만, 그 결실을 누리는 것은 오직 기술자를 귀하게 여기는 나라뿐이라는 사실을 이와미의 은빛 물결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습니다.